우크라이나 전쟁 1년, 한국의 생존전략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한국의 생존전략
그렇다고 해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부 문제로 무너져가고 있었던 러시아가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었다.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조청수륙무역장정을 맺도록 강요하였다.그렇기에 역사인식의 정치화는 너무나 위험하다.그나마 근대화를 위한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이 지식인들과 백성들의 눈에는 단지 왕실을 위한 작업으로 비추었다.
무엇보다도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는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학계와 시민사회의 거리를 좁힐 때 더 이상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말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였다.
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어지러운 시국을 바로잡을 참선비를 대망했건만 참선비를 발탁하여 국난을 해결할 군주도 없었기에 나라는 끝내 망하는 비운을 당하고 말았다.
다산의 참선비론을 보자.권력을 앞세워 반대 세력을 억누르기도 한다.
자신을 선비라 하지 않으면 섭섭할 것이다.재상이야 잘만 고르면 언제라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