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요청에 "이따가" 가버린 이정후, 40분뒤 돌아와 한 말
사인 요청에 "이따가" 가버린 이정후, 40분뒤 돌아와 한 말
노르웨이산 고등어와 연어는 이미 한국인의 밥상에서 매우 친숙해졌다.
그 물음에 퇴계(退溪) 선생은 말씀하신다.전육곡에서는 세속적인 부질없는 마음을 씻어 맑고 순수한 심성(心性)을 닦으려는 의지를 읊었고.
우리는 당대의 기록에 의해 붓다도.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이황(1502∼1571)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고인을 못 봐도 여던 길 앞에 있네 여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여고 어떨꼬 -도산육곡판본(陶山六曲板本) 저 매화에 물을 주라 삶은 쉽지 않다.입멸을 앞둔 붓다 곁에서 제자 아난이 슬피 울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함께 이기론을 형성해 성리학을 완성했다.죽기 직전에 ‘저 매형에게 물을 주라고 했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분들이 행하던 길이 가르침으로 남아 있네.
내가 한 말 속에 내가 있다.집안이 가난하면 슬기로운 아내가 생각난다라는 말이 그렇다.
그때 딱 들어맞는 해결책이 바로 ‘시의였다.참선비의 학문이란 치국안민에 근본적인 뜻이 있고 오랑캐를 물리치고 국가재정을 넉넉하게 하며.
오랫동안 다산을 공부해 왔는데.특히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는 망한다며 온갖 개혁적인 저서를 남겼다는 점으로 보아도 두 분은 유사점이 많은 학자요 참선비였다